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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7. 17世 〉24. <광양공>경수공휘신해묘갈명(耕臾公諱信海墓碣銘)
1. 문헌 목록 〉17. 17世 〉26. <태사공>감모재기(感慕齋記)휘세문(諱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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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제공>증가선대부송암공휘정열기적비명(贈嘉善大夫松菴公諱廷烈紀蹟碑銘)
贈嘉善大夫松菴公紀蹟碑銘 傳曰立身行道揚名於後世以顯父母孝之玷也盖人生斯世立身行道揚名於後世果難事也 然而以不得立身行道揚名於後世不思顯其父母則是豈爲人子孫之道乎 據湖南南原郡金池面下島里故贈嘉善大夫狀草則公諱廷烈宇思重號松菴自高麗光祿大夫檢校門下侍中諱璋歷四世諱元吉官門下侍中封玉川府院君始爲玉川趙氏而諱琰官北兵使其十二世祖諱玷官羅州牧使其七世祖也 高祖諱海元曾祖論平而世皆以文學嗚祖諱聖重贈同中樞府事考諱賢謙贈嘉善大夫 公以乙丑三月七日生克紹先志早謝公車養德山林專心性理至於退栗兩先生四七之辨沉潜玩索一導師門之正脉一生以書籍蔗娛爲蔗家箕裘之業天性至孝生事葬祭克盡誠禮有靈鷲落雉以供祭需三年侍墓有虎守廬之異鄕人莫不稱其孝處兄弟友愛隆篤同被間衣和氣融融延及鄰里宗黨擧皆雍穆 晩年尤好山水每歲暮春與六七益友携臺酒散步於盤石上放懷於茂林之中有風乎沂浴之像士林莫不稱其德 壬午五月十五日卒墓谷城郡曳山面鶴嶝隆邊壬坐之原贈嘉善大夫配貞夫人密陽朴氏丙寅生貞欽女天性柔順事舅姑極盡志體及病禱祭天山願以身代夫有長割股肉和羹烹進即瘳鄕稱其孝烈見湖南三綱錄乙亥四月十五日卒墓同郡古達面虎谷區域射洞東麓甲坐之原擧三男長夢寅出后伯父次夢表夢玉夢表生三男鶴述鶴祿鶴瑩出后夢寅夢玉生三男鶴鍾鶴洙鶴奎鶴述一男春孝鶴祿一男泰孝鶴鍾二男相孝瑞孝鶴洙一男龍孝鶴奎二男秉孝君孝春孝一男化鉉泰孝一男周鉉相孝一男宇鉉瑞孝一男寅鉉龍孝三男彩鉉完鉉千鉉秉孝二男升鉉太鉉君孝二男碩鉉奉鉉餘煩不錦嗚呼公外內事行足以爲節於鄕黨而年代漸遠典刑幾至泯沒豈不惜哉幸而去乙亥秋曾孫秉孝祚三架亭於下島村前鶉江遺墟扁以遠慕而參判尹寗求作上樑文參判金鎭漢作記今癸未春玄孫升鉉欲建紀績碑於亭側謁余以銘以謀壽傳此非向所謂以顯父母者耶余聞而嘉其事遂爲之銘曰 文學世家孝友天性林下劬經顔曾思孟酷好性理日夕涵泳祭必以誠靈鷲落雉山君守廬人稱孝子姜肱代被兄弟相倚春秋登臨千紅萬紫道氣薰人孰不興起擾鹿孟光閨中女士爲舅願代誠悃至矣夫病割股可書彤史福善禍淫天道如是芝蘭連綿鸞鵠停峙玄孫伐石勒其終始余庸作銘傳之百禩 正二品資憲大夫掌禮院議政府贊政 完山 李載現 撰 증가선대부송암공기적비명(贈嘉善大夫松菴公紀蹟碑銘) 전하여 오기를 입신하고 행도하여 이름을 후세에 빛내어 부모를 나타나게 하는것이 효를 다 한것이라 하였다. 대개 사람이 태어나서 입신행도하여 이름을 후세에 빛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 그러나 입신향도하여 후세에 이름을 빛내는 것을 알지 못하여 부모를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어찌 자손의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호남의 남원군 금지면 하도리에서 살았던 증가선대부장초를 살펴본즉 공의 휘는 정열이고 자는 사중이며 호는 송암인데 고려조 광록대부 검교문하시중 휘장으로부터 그 삼세인 원길이 문하시중으로 옥천부원군에 봉작되어 이를 시조로 옥천조가가 시작된다. 그 후 휘염은 북병사로 그 십이세조요 휘점은 나주목사로 그 칠세조이였다. 고조는 휘해원이며 증조는 휘논평인데 이들은 모두가 다 문학으로써 유명하였고 할아버지는 휘가 성중인데 증동중추부사이며 고는 휘가 현겸인데 증가선대부이였다. 공은 을축년 삼월칠일 출생하여 선지를 이어받아 일찌기 공명을 사절하고 산림간에서 덕을 쌓아 퇴계율곡 양선생의 사서칠정논에 이르는 성리학을 공부하여 사문의 정맥을 터득하고 일생을 책을 읽는데만 몰두함으로써 자가의 기구지업으로 삼았다. 천성이 본래 효우돈실하여 생사장제에 극진하고 정성을 다 하였으니 신령한 독수리에 의해 땅에 떨어진 꿩을 제수로 공봉하고 삼년시묘에 호랑이가 그 여막을 수호했다는 이조가 있었으니 향방이 그 효성을 칭송하지 아니한자가 없었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여 장침대금에 융성한 화기가 향리에 미치니 종당이 다 화목하였다. 말년에 더욱 산수를 좋아하여 매년 모춘에 육칠명의 사우와 함께 술병을 차고 반석위를 산보하며 무림중에 소요하여 탈속한 기상이 있으니 사림중에 그 덕을 칭송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임오년 오월 십오일에 돌아가시니 묘소는 곡성군 예산면 학증의 승변 임좌의 언덕에 마련하였으며 가선대부에 즉직되었으며 배는 정부인 밀양박씨인데 병인생으로 정음의 여이었다. 그 천성이 본디 유순하여 시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극진히 봉양하였고 병환이 나시자 천지신명께 빌어 자신이 대신하고자 하였으며 지아비가 불치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니 다리살을 잘라내어 다려 먹이니 병이나았아다. 향당에서 크게 칭송하고 호남삼강록에 등재하였다. 을해 四월 十五一일에 졸하이 묘는 고달면 호곡구 역사동 동쪽 기슭의 갑자 언덕에 안치하였다. 삼남을 두셨는데 그 중 장남인 몽인은 백부의 후사로 출게하고 차자는 몽표 몽옥인데 몽표는 학술 학녹 학영 삼자를 두셨는데 학영은 몽인의 후사로 출게하였으며 몽옥은 학종 학수 학규 삼자를 두셨다. 학술은 일남 춘효하였고 학녹은 일남 태효하였고 학종은 이남 상효 서효하였고 학수는 일남 용효하였고 학규는 이남 병효 군효하나 춘효 일남 화현하였고 태효는 일남 백현하였고 상효는 일남 우현하였고 서효는 일남 인현하였고 용효는 삼남 채현 원현 천현하였고 병효는 이남 승현 대현하였고 군효는 이남 석현 변현 등등이니 다 기록하지 못하노라 아! 슬프다. 공내외의 사행이 충분히 향당의 모범인데 세대가 오래되고 전형이 민몰하니 어찌 아깝지 않으리요 다행이 을해년 가을에 증손 병효가 삼가정자를 하도리앞 녹강유허에 세우고 원모라 현판하고 참판윤재구 상양문을 짓고 참판 김진한이 기문을 썼다. 계미년 봄에 현손 승현이 정자 곁에 기적비를 세우고 싶다면서 내게 비명을 받아 오래도록 전하고자 하더니 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부모를 현양한 것이 아닌가. 내가 그것을 듣고 가상히여겨 마침내 새기여 전 하노라. 문학세가로 그 효우는 천성이라 숲속에서 글에 힘쓰니 안증사맹이로다 더우기 성리학을 좋아하여 밤낮으로 연구에 힘쓰네, 제사는 항상 치성으로 하니 영취락치로다 태산군자가 여막을 호위하니 효자라 칭송받네, 강굉의 큰 이불로 형제가 서로 의지하도다 봄 가을이면 등임하니 천홍만사로다 도기로 사람들을 가르키니 누가 흥기하지 않으리오, 사슴처럼 유순하며 맹광같은 귀중의 여사로다 시부를 위해 태신을 원하였으니 정성도 지극하구나 부군의 병에 다리살을 베었으니 죽백에 써지리라 착함은 복이고 음탕함은 화인 바가 천도임을 이는 말하는구나 자손이 진지하나 난곡정치로다, 현손이 돌을 세워 그 시종을 새기니 내 그 비명을 지어 백세에 전하노라 정이품자헌대부 장례원 의정부 찬정 완산 이재현 삼가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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